닥종이 공예 작가 인터뷰: 영감을 얻는 순간들
닥종이 공예는 우리 한지의 따스하고 질긴 생명력을 담아내는 한국의 전통 예술입니다. 손끝의 정교함과 인내를 통해 살아 숨 쉬는 듯한 작품을 창조해내는 닥종이 공예 강희숙 작가님을 만나, 그녀의 작업과 영감의 순간들에 대해 깊이 있는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습니다.
Q. 작가님, 안녕하세요! 닥종이 공예는 우리에게 친숙하면서도 여전히 신비로운 예술 분야인 것 같아요. 작가님께서 닥종이 공예를 시작하시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A. 안녕하세요. 저는 원래 디자인을 전공했어요. 그러다 우연히 한지 박물관에 갔다가 닥종이 공예 작품을 처음 접하게 되었죠. 종이라는 평범한 재료가 그렇게 입체적이고 생명력 있는 형태로 변모할 수 있다는 것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특히 닥종이 인형의 표정에서 느껴지는 따뜻함과 해학에 매료되어, 직접 한지를 만져보고 싶다는 강렬한 충동을 느꼈어요. 그렇게 독학으로 시작해서 이제는 제 삶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Q. 닥종이 공예는 섬세하고 오랜 시간이 필요한 작업으로 알고 있습니다. 작업 과정에서 작가님이 가장 즐거움을 느끼시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A. 가장 큰 즐거움은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는 과정' 그 자체인 것 같아요. 처음에는 닥나무 껍질을 벗겨 만들어진 한지라는 평면적인 재료일 뿐이죠. 하지만 여기에 풀을 바르고, 결을 따라 찢고, 겹겹이 쌓아 올리며 형태를 만들어 나갈 때, 재료가 가진 잠재력이 발현되는 것을 느낍니다. 특히 제가 의도했던 표정이나 움직임이 한지 위에 스며들 듯 나타날 때의 희열은 정말 특별합니다. 손끝에서 종이가 살아 숨 쉬는 듯한 감각, 그 몰입의 순간이 가장 즐겁습니다.
Q. 작가님의 작품들을 보면 전통적인 소재부터 현대적인 조형물까지 스펙트럼이 넓은데요. 주로 어떤 것에서 영감을 얻으시는지 궁금합니다. 작가님만의 '영감을 얻는 순간들'은 언제인가요?
A. 영감은 정말 예상치 못한 순간에 찾아오는 것 같아요. 제게 영감의 원천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자연의 형태와 빛: 저는 산책을 정말 좋아합니다. 길가의 작은 풀잎 하나,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의 실루엣, 햇빛이 나뭇잎 사이로 스며드는 모습, 구름의 유동적인 형태… 이런 자연의 섬세한 선과 면, 그리고 순간적으로 변하는 빛과 그림자의 조화에서 많은 영감을 얻어요. 특히 거칠지만 깊이 있는 나무껍질이나 바위의 질감은 한지로 표현하고 싶은 욕구를 불러일으킵니다.
일상 속의 사람들과 감정: 지하철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의 무표정한 얼굴, 아이들이 천진난만하게 웃는 모습, 혹은 어딘가 쓸쓸해 보이는 뒷모습에서도 영감을 얻곤 합니다. 우리 삶의 희로애락, 관계 속에서 피어나는 미묘한 감정들을 닥종이로 표현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때로는 어릴 적 할머니가 들려주시던 옛이야기나 전설 속 인물들의 모습에서 영감을 받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기도 합니다.
오래된 것들, 그리고 전통: 고미술품이나 박물관에 가는 것도 좋아합니다. 오래된 토기나 목공예품에서 느껴지는 투박하지만 견고한 아름다움, 시간의 흔적이 담긴 색감에서 많은 것을 배웁니다. 특히 우리 전통 문양이나 건축물에서 발견되는 간결하면서도 조화로운 미학은 제 작품에 한국적인 깊이를 더하는 중요한 영감원이 됩니다. 가끔은 낡은 한옥의 창호에서 빛이 스며드는 모습처럼, 전통적인 공간에서 느껴지는 아늑함과 정서적인 울림을 닥종이로 담아내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Q. 영감을 작품으로 구체화하는 과정은 어떻게 되나요?
A. 영감을 얻으면 일단 스케치북에 간단하게 아이디어를 정리해요. 그리고 바로 한지를 만져봅니다. 머릿속의 이미지를 한지에 대입해보는 과정이죠. 같은 한지라도 어떤 방향으로 찢느냐, 몇 겹을 붙이느냐, 혹은 어떤 색상의 한지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느낌이 완전히 달라지거든요.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한지가 가진 물성을 탐구하고, 가장 적절한 표현 방식을 찾아나갑니다. 때로는 처음의 아이디어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기도 하는데, 그 과정 자체가 흥미롭습니다.
Q. 작업하시면서 슬럼프를 겪으신 적은 없으신가요? 어떻게 극복하시는지 궁금합니다.
A. 물론이죠. 저도 사람인지라 풀리지 않는 작업에 답답함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그럴 때는 억지로 작업대에 앉아있기보다는 잠시 모든 것을 내려놓고 다른 활동을 합니다. 영화를 보거나, 음악을 듣거나, 새로운 전시를 보러 가기도 하고, 아예 자연 속으로 들어가 바람을 쐬기도 해요. 그렇게 충분히 쉬고 다시 작업실로 돌아오면 신기하게도 막혔던 부분이 풀리거나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곤 합니다. 작업이 잘 안 풀릴 때는 '쉼'이 가장 좋은 해결책인 것 같아요.
Q. 작가님께 닥종이 공예란 어떤 의미인가요? 마지막으로 닥종이 공예에 관심 있는 분들께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A. 저에게 닥종이 공예는 '삶의 통로'이자 '치유의 과정'입니다. 한지를 만지는 모든 순간이 저를 돌아보고, 저의 감정을 표현하며, 삶의 에너지를 얻는 과정이에요.
닥종이 공예는 특별한 재능이 없어도 누구나 시작할 수 있는 매력적인 예술입니다. 서두르지 않고 한 겹 한 겹 정성을 다하는 과정 자체가 소중한 경험이 될 거예요. 닥종이가 가진 무한한 가능성을 통해 여러분만의 이야기를 담아내시길 바랍니다. 분명 여러분에게도 깊은 영감과 힐링을 선사할 것입니다.
작가님의 진솔한 이야기를 통해 닥종이 공예가 단순한 공예를 넘어, 작가의 삶과 깊이 연결된 예술임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 강희숙 작가님의 작품들이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과 위로를 전해주기를 기대합니다.